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읍 전투 (문단 편집) === 전투 === [[파일:66WAZiB.jpg]] 한신이 군사를 몰고 오자 위표는 이를 막기 위해 포판(蒲坂)[* 산서성 영제현(永濟縣) 서쪽]의 수비를 강화하고, 임진(臨晉)[* 섬서성 대려 현(大荔縣)]의 수로를 막아 우주방어 형세를 갖추었다. 포판 등은 안읍의 서쪽에 있었음으로, 여기서 한신은 안읍의 동쪽인 형양에서 출진하지 않고, 안읍의 서쪽인 약양(櫟陽, 역양)에서 출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유방은 약양과 형양을 계속해서 오가고 있었기 때문에, 한신은 유방이 약양에 있을 무렵 출발했던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유방은 6월 경에는 약양에 있었고 8월 경에는 형양으로 이동했으니 한신의 출격은 유방이 형양으로 떠나는 바로 동시에 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위나라에 있던 역이기가 귀환하면서 위표의 전쟁 준비를 알 정도였으니, 당시 위표는 이미 치밀하게 준비하여 수비에 만전을 기울였을 것이 자명하다. 한신으로서는 위표가 만전을 기울이는 지역에 들이붓는다면 심각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신은 묘한 작전을 생각해낸다. 우선 한신은 아군이 대군으로 보이게끔 위장하며 적군과 대치하면서, 실제로는 포판보다 좀 더 북쪽에 있는 하양(夏陽)으로 일부 군대를 이동시켰다. 그리고 목앵부(木罌缶)[* 항아리를 나무에 매어 타고 강을 건너는 것]에 군사들을 태워 강을 건너게 한 후, '''비어있는 안읍으로 군대를 기동시킨다.''' 궁금해지는 것은 양쪽으로 나뉜 한군, 즉 위표와 전선에서 대치하고 있던 부대와 우회기동하여 안읍을 타격하는 부대 중 어느쪽을 한신이 지휘했느냐 하는 점인데, 사기 조상국세가에서는 조참이 동쪽으로 나아가 위나라 장군 손속(孫遫)을 동장(東張)에서 대파했다는 언급이 보인다. 조참이 대치하는 부대를 이끌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아도, 그 외에 이후 한신과 위표가 대적했다는 언급을 보면 한신이 별동대를 이끈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렇게 한신이 움직이는 사이, 소식을 들은 위표는 기겁하여 군대를 이끌고 한신을 상대하기 위해 회군을 시작했다. 조상국세가에서 [[조참]]이 동장에서 손속을 무찔렀다는 이야기는 이 시점으로 보인다. 즉 위표가 한신을 상대하기 위해 부랴부랴 군대를 돌린 이후, 세력이 약화된 포판의 부대는 조참에게 무너지고 만 것이다. 이후 기세를 탄 조참은 바로 안읍으로 진격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위표는 제대로 싸움 한번 해보지 못하고 오가는 동안 양쪽으로 공격을 당할 상황에 처해졌다. 한신이 약간의 군사기동만으로 적의 수비라인을 완전히 무너뜨린 사이, 조참은 쾌진격을 거듭했다. 조참의 부대는 안읍에서 왕양(王襄)을 포로로 잡았다. 이후 곡양(曲陽)에서 위표의 부대는 조참 등에 의하여 패배했고, 조참은 무원(武垣)까지 추격하여 '''결국 위표를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그 후 마무리도 아마 잔당 등이 남아 있을 위나라의 수도 평양(平陽) 등을 공격하여 위표의 처자식 등을 모조리 사로잡고, 여타 52개성을 평정하였다. 전쟁은 끝났다. 서위는 이렇게 완전히 멸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